마음의 평안
마음의 평안. 아마 살아가면서 가장 중요한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우리는 왜 괴롭고 불행을 느끼는 것일까? 그건 마음의 평안을 잃어서이다. 같은 일을 당해도 어느 사람은 불행을 느끼고 어느 사람은 그렇지 않다. 마음의 평안이 있고 없고에 따른 것이다. 아무리 큰 일을 당해도 마음이 평안하다면 특별히 불행을 느끼지 않을 수 있다. 가족을 잃어도, 회사가 부도가 나도 마음이 평안하면 견딜 수 있고 마음이 평안하지 못하면 견디지 못하게 된다.
철학과 종교
동서고금의 모든 철학과 사상은 진리를 찾는 여정이기도 하지만 개인적 차원에서는 결국 마음의 평안을 지키기 위함이다. 그래서 유사 이래 많은 철학과 철학자들은 마음의 평안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고 자신이 찾은 방법을 전해주었다.
불교에서 인연을 끊는다는 것은 이로 인해 마음의 평안을 잃지 않겠다는 것이다. 기독교에서 하나님을 바라고 천국을 소망하는 것도 결국 마음의 평안을 지키기 위함이 아닐까?
그러나 종교뿐 아니라 철학에서도 마음의 평안은 중요한 화두였다. 그중에서도 로마 시대의 스토아 철학은 일반인들에게 마음의 평안을 가르쳐 주는 철학이다. 스토아 철학은 어떤 방법으로 마음의 평안을 지킬까? 스토아 철학이 우리에게 물려준 마음의 평안을 지키는 방법은 무엇일까?
스토아 철학에서는 최악의 상황을 상정하라고 가르친다. 그러면 현재의 불행을 견딜 수 있다고 한다. 미리 고통을 스스로 경험하는 것이다. 시험에서 안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고 해도 퇴학을 당한 것은 아니라고 스스로 위로할 수 있다. 자녀를 잃는다 해도 남은 자녀가 있음을 감사하는 식이다.
더하기보다 빼기
무언가를 더해서 마음의 평안을 찾으려 하는 것이 아니라 최악의 상황이 아님에 마음의 평안을 지키는 것이다. 더하려 하면 불안하다. 아직 얻지 못한 것에 대한 불안과 불만이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내려놓고 뺀다면 없는 것에 불안을 느끼지 않게 된다.
현대 사회는 무언가를 더해야 한다는 강박증에 시달리고 있다. 좋은 학점을 더해야 하고 좋은 직장을 더해야 행복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더하려 하면 할수록 마음은 불행해지고 불안해진다.
진정한 마음의 평안과 평화는 뺄 때에 가능해진다. 그래서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윌든 호숫가로 들어갔을 것이다.
물론 그런 삶의 태도는 인생에 소극적이고 성취라곤 없는, 일반인이 볼 때는 실패한 인생일 수 있다. 하지만 철학을 하는 사람이라면 능히 그런 삶의 태도를 견지해야 할 것이다.
황제의 호의로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었겠지만 디오게네스는 그저 알렉산더에게 햇빛을 가리지 말고 비키라고만 했다. 그는 모든 것을 내려놓음에 주저함이 없었다.
어렵다. 이미 사회의 매트릭스에 갇혀 살고 있기에 이 그물망을 빠져나간다는 것은 어렵다. 아니 용기가 없는 것이다. 모든 것을 버릴 수는 있을지라도 모든 계를 끊는 것은 힘들기 때문이다.
그럼 어찌해야 할까? 사회의 구성원으로 가정을 이루고 살고 있는데 이제 와서 모든 것을 버리고 떠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래서 철학이 필요하다.
철학은 일상에서 사람들이 추구하는 것의 덧없음과 피상적임을 간파하는 학문이고 삶의 자세다. 그래서 철학자들은 삶을 거부한다. 일반화된 삶을 거부하는 것이다.
그들의 가치는 세상 속에서의 성공이 아니라 마음의 평안이고 피상적인 것이 아니라 근본에의 접근이다. 비록 완성은 못한다 해도 그런 삶의 태도를 가지고 산다면 세상 속에서도 마음의 평안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스토아 철학자들이 그랬던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