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초 계몽주의의 시대 이래로 서구에서는 자유주의가 지배적인 이데올로기로서 사회에 영향력을 행사해 왔다. 개인의 존엄성, 자유, 평등과 같은 가치에 기초한 사회를 주창하는 자유주의에 대한 공동체주의자들의 비판은 근자에 와서 그 목청을 점점 높여 가고 있다. 자유주의의 철학적 기초는 무엇인지 존 롤즈의 이론을 통하여 알아보자.
목차
- 존롤즈
- 존롤즈 정의론의 영향
- 사회의 덕목
- 분배의 문제
- 정의
존 롤즈
롤즈는 1921년에 태어나서 1950년에 프린스톤 대학에서 철학 박사 학위를 수여받았다. 53년부터 59년까지 코넬 대학에서 교수로 재직하다가 62년부터 하버드 대학에서 가르쳐 왔다.
존 롤즈 정의론의 영향
그는 정의의 문제만을 일관되게 관심을 가지고 연구해 온 학자로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다. 그의 저서로는 『사회 정의론』과 『정치적 자유주의가 있고, 그 이외에도 "공정으로서의 정의 : 정치적이지 형이상학적이 아님”을 비롯한 많은 논문이 있다.
플라톤의 『국가론』에서 트라시마코스가 소크라테스에게 "정의는 강자의 이익을 대변한다"라고 강변한 이래로, 철학자들은 안정된 사회질서를 확립하고 구성원의 권리와 복지를 옹호할 수 있는 보편적 원칙에 기초한 정의의 개념을 탐구하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그러한 보편적 정의원칙이 신으로부터 우리 인간에게 부여되는 것이 아니라, 합리적 인간의 자발적 의사의 합의에서 도출된다는 사상이 바로 사회 계약론이다.
그러나 홉스, 로크, 루소, 칸트와 같은 철학자들이 제시한 사회 계약론은 모든 사회 구성원이 실제로 합의에 이르는 장을 연출할 수 없다는 점에서 비현실적인 이론으로 무시되고 역사의 뒤안길에 묻히게 되었다. 특히 20세기에 들어서 인간의 경험에 의해서 직접적으로 검증될 수 없는 모든 이론은 무의미한 것으로 간주하는 논리 실증주의의 대두에 따라서 정의의 보편원칙을 발견하려는 노력은 근거 없는 개인적 편견을 제안하는 것에 불과한 것으로 무시되었다.
따라서 아이사 벌린은 1962년에 "20세기에 어떠한 의미있는 정치 이론도 나타나지 않았다"고 말하면서, 도덕 정치철학의 장송곡을 울렸다. 또한,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유물론적 사관에 입각하여서 자유주의적 원칙에 기초한 계급사회는 내부적 계급모순으로 인하여 필연적으로 멸망의 길을 걸어갈 것이라고 주장하고, 도덕과 정의는 상부구조에 속하는 것으로 토대의 반영에 불과하여서 보편적일 수가 없다고 주장하였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 속에서 1971년 발표된 존 롤즈의 사회 정의론은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그 충격은 자신들의 사회적 역할에 대하여 비관적인 생각과 무관심으로 일관한 철학자들에게만 머무른 것이 아니라, 인접 사회 과학계-정치학, 경제학, 사회학, 법학 등 전반에 걸쳐서 실로 엄청난 지각변동을 일으켰다.
롤즈의 업적에 대한 그러한 반응은 그가 지나치게 형이상학적인 이론에만 얽매인 것이 아니라, 사회 과학적인 방법론-합리적 선택론을 과감하게 도입하여서 자신의 탄탄한 도덕적 직관을 논리적으로 전개하려고 했던 점에 기인한다. 노벨상을 수상한 경제학자 애로우의 『불가능성 일반론』이래로 자유 민주주의적인 방식을 통하여 사회 구성원들의 복지를 집약하는 사회 효용함수의 도출이 불가능하다는 생각은 경제학자들 사이에 하나의 움직일 수 없는 정설로 굳어져 있었다.
롤즈 정의론의 획기적인 의미 중의 하나는 만장일치의 합의로 사회 효용함수가 도출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설득력있게 보여 주었다는 점이다. 비록 이러한 주장이 후기에 가서 다소 완화된다고 하더라도, 이것이 바로 롤즈가 규범 경제학자들에게 던진 충격 중의 하나다.
사회의 덕목
롤즈는 한 사회가 가져야 할 덕목을 안정성, 효율성, 그리고 정의로 인식하면서도, 그중에서 정의가 사회의 제1덕목이라고 주장한다.
이 세 가지 덕목은 물론 상호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지만, 서로 정비례하는 것만은 아니다. 더 나아가서, 롤즈는 한 사회를 경쟁과 협동이 동시에 공존하는 장소로서 이해한다. 각 개인이 고립된 삶을 살아가는 것보다 사회를 구성하고 상호협동하는 것이 모든 사람에게 이롭다는 점에서 각 개인은 상호 협동적이다.
그러나 공동의 노력으로 창출된 가치를 분배하는 데에 있어서 각 개인은 가능한 한 자신의 몫이 많기를 바란다는 점에서 상호갈등의 관계에 있다. 이러한 사회관은 계급사회에서 계급들간에 존재하는 '화해할 수 없는 갈등'으로 인하여 계급투쟁이 필연적이다라고 보는 마르크스주의자들과 롤즈가 구분되는 가장 두드러진 특징이다.
분배의 문제
문제는 어떻게 협동의 관계를 파괴하지 않으면서도 구성원 모두에게 혜택을 골고루 분배하는 정의의 원칙을 도출하는가이다. 정의의 원칙에 대한 합의가 사회의 기본생존과 직결되어 있는 이유는 지속적인 사회발전과 경제성장이 분배정의의 실현없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분배정의의 실현은 지속적이고 효율적인 사회 발전의 충분조건은 아니라고 하더라도 분명히 필요조건이다. 왜냐하면 자신이 계속적으로 착취당하고 있다고 믿는 사람에게서 자발적인 협조를 지속적으로 요구할 수 없는 것이고, 그러한 상황에서 지속적 발전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가 지난 날 겪었던 격렬한 노사분규는 이러한 점을 잘 보여 준다.
문제는 실증주의적 방법론에만 의존하는 경제학자들은 가치중럽을 스스로 외치는 만큼 과학성을 추구할 수 있을는지는 몰라도, 우리가 나아가야 할 정책방향과 정의의 원칙을 제공하지는 못한다. 규범적 가치에 대한 분석이 분배정의의 실현에 필수적이라는 점에서 도덕 철학자의 역할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고, 이것을 롤즈는 충실하게 수행해 냈다.
자원이 적절하게 부족한 상황하에서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개인들이 자신의 특수한 상황에 대하여 모르는 '무지의 장막' 뒤에 있다는 가상적 상황이 롤즈의 그 유명한 '원초적 입장'이다. 자신의 입장을 남의 관점에서 서로서로 생각함으로써 ㅡ 즉 예수의 황금률, 또는 공자의 "인" 사상과 같이, 우리는 도덕판단의 공정성을 보장받게 되는데, 이와 유사한 역할을 하는 것이 '무지의 장막'이다.
정의
'정의의 두 원칙'은 이러한 '원초적 입장'에서 만장일치로 합의됨으로써 공정성을 획득하게 된다. '정의의 두 원칙'은 모든 사람이 가능한 최대한으로 광범위한 평등한 자유를 부여받아야 한다"는 제1원칙과, 사회적 불평등이 인정될 수 있는 두 가지 전제조건은 (1) 불평등한 사회적 지위에 접근할 수 있는 기회가 평등하게 부여되어야 하고, (2) 그 불평등이 가장 열악한 위치에 있는 사람에게 주어진 최대한의 배려인 경우이다"라는 제2원칙으로 구성되어 있다.
한편으로, 모든 경우에 있어서 개인의 자유 - 예를 들어, 투표권, 신체의 자유, 사상과 표현의 자유 등 - 는 평등하게 부여되어야 한다는 점을 최우선적으로 표방한다는 점에서, 롤즈는 자유주의적 전통에 굳게 서 있다. 롤즈는 개발독재와 같이 경제적 발전을 담보로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는 것에 반대하는 입장을 분명하게 한다.
다른 한편으로, 모든 사람들을 무분별하게 하향적으로 평등화시키는 정책에 반대하면서, 공정한 기회가 부여되고 사회에서 가장 취약한 입장에 있는 자들에게 최대한의 도움이 부여 되는 방식으로 전개되는 불평등을 지지한다.
우리 사회에서는 아직도 정의라는 말만 들으면, 이성을 잃고 흥분하면서, 이미 정의로운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정답을 알고 있고, 그것을 실천에 옮기는 일만 남아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정의의 문제는 철학자들의 냉철한 분석을 선행적으로 거친 후에, 우리 사회 구성원들이 합의할 수 있는 바람직한 대안을 발견하고, 또 그것을 합리적으로 우리 현실에 적용하는 일련의 과정을 밟음으로써 비로소 해결되는 것이다.
롤즈는 우리에게 첫째, 민주주의적 절차에 대한 신념을 가지지 못하고 매사를 혁명적 상황으로 인식하려고 하는 극우세력과 극좌세력 모두에게 우리가 어떠한 동의도 할 수 없고, 둘째, 개인의 자유와 권리가 정당한 근거없이 부당하게 억압되어서는 안 되고, 셋째, 평등이 기계적으로 적용되어서 모두가 못살게 되는 것 보다는 불평등이 공정하게 이루어지는 것이 더욱 정의롭고, 넷째, 정의의 문제가 폭력혁명이나 탄압이 아닌 이성적 방법으로 해결될 수 있다는 점을 보여 주었다.